선택글 상세보기
제목 2025년 시무식 이태원대표님 신년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5.01.13 조회수 26
한 개구쟁이 소년이 숲속을 지나다가 작은 돌멩이를 장난삼아 발로 찼는데, 그만 풀 속에 
숨어있던 개구리를 정통으로 맞혔습니다.
머리에 시퍼렇게 멍이 든 개구리가 엉엉 울면서 생각을 하니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소년이 너무 괘씸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전생에 무슨 원수가 졌다고?’

너무 억울해서 잠도 안 오고, 자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벌떡 일어나서 씩씩 거렸습니다.
개구리가 비통한 울분을 토하며, 그 마음에 부글거리는 복수심으로 괴로워 할 때, 그 개구리를
괴롭게 한 개구쟁이 소년도 같이 괴로워하면서 잠을 못 잤을까요?
착각입니다. 그 소년은 자기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 줄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상처를 받아서 억울해 하는데 상처를 준 사람은 당신이 아파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것입니다.
즉 누군가가 아파하는 것에 대하여 미안해 할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번 뿐만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 까지 라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즉 490번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죄의 무겁고 가벼움을 떠나, 내가 받은 상처와 상관없이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횟수와 상관없이 상대방 뿐만 아니라 나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짧은 인생 속에서 상처 받는 것도 억울한데, 그 상처의 울분을 가지고 바보처럼 끌어안고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의사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환자들의 약 70~80%는 마음의 병에서 육체의 병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용서’라는 하수처리 기능이 잘 돌아가는 사람은 매우 건강한 삶을 살지만 그 기능이 고장 난 사람은 마치 쓰레기
 매립장 옆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처럼 온갖 악취로 고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크게 두 가지 고통이 있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병, 가난, 고역 등 육체적인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절망감, 열등감, 고독감과 이러한 것들로부터 생기는
우울증 같은 정신적 고통입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근심에 찬 밤들을 울면서 지새워 보지 못한 자, 그는 그대들을 알지 못하리, 천상의 힘들이여!’
라고 괴테는 말하고 있습니다.
굶주림의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간신히 손에 넣은 단 한조각의 빵을 눈물을 흘리면서 먹는 그럼 비통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다면 진정한 인생에 대해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결국 인간은 고통을 통하여 발전하고 성숙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저는 10대 시절에는 모두가 가난한 삶을 살았고
20대에는 군 생활 3년과 직장생활을 하였지만 갈등과 혼돈의 시간이었습니다. 
30대에는 결혼과 함께 태어난 아이들 때문에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40대에는 세무사로서 사무실 개업과 일에 파묻혀서 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50대에도 워커홀릭에 빠져 살았던 기억밖에는 없습니다.
60대에는 너무도 빨리 지나가서 무엇을 했는지 별로 기억이 없는 듯합니다.
지나간 시절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고 남은 세월은 더욱 빨리 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러나 할 일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고통이 있어서 살맛이 납니다.

사랑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제 인생의 후반전에서 살아온 시간들을 살펴보면 인생의 여명보다 황혼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해 뜰 때보다 해 지는 황혼이 저는 더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본 상담학 책에 유산한 여인의 아픔에 대한 글을 보면서 내 인생도 그렇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삶에 고통을 가지고 오는 요소는 외부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 실패나 상처 혹은 슬픔의 근본적인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나 자신에게도 있는데, 내면적 아픔 즉 유산한 여인의 아픔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여인의 유산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거니와, 그 책임과 아픔을 자기 자신이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데 가서 하소연도 할 수 없는 내면적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유산이란 자녀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인생의 모든 중요한 영역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바쳐 투자했던 삶의 목표들, 자신의 젊음과 능력과 시간과 재물을 다 동원해서 이루고 싶었던 인생의 꿈 등 
많은 영역에서 정신적 유산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를 상실되었을 때 오는 내면적 아픔이 오게 되고, 
이러한 상처가 치유되지 못하면 바로 인생의 방향이 부정적으로 휘게 되는 전환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자녀의 유산이 인생의 유산이 아니고,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단 한 번의 유산 일 뿐 다시 용기를 내어서 다른 아이를 잉태하는 새로운 도전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전보다 철저히 준비해서 또다시 꿈을 꾸고 희망을 설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30세 까지는 준비운동 기간이고, 55세 까지는 전반전을 끝낸 상황, 
85세 까지는 후반전이며, 그 이후는 연장전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도 없는 94%의 일에 대해 걱정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나 자신을 아는 것이고, 제일 쉬운 일은 남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미는 종류에 따라 유충으로 7년에서 길게는 17년까지 땅 속에서 살다가 지상으로 나오면 바로 성충이 됩니다.
칙칙한 껍데기를 남기고 아직은 여린 몸으로 바깥세상에 나온 매미는 기적 같은 변태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갈라진 날개가 생기고, 매미는 날개를 힘차게 흔들며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그리고 나무에 붙어 수액을 빨아먹고 노래 부르며 7일에서 한 달 정도 살면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나무껍질 속에 
낳고는 생을 마감합니다.
땅 속에서 산 세월에 비해 바깥세상에서 보낸 삶은 너무도 짧습니다.
아마도 매미의 인생이 인간의 인생을 은유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온 70세 가까운 세월도 앞으로의 남은 시간을 준비한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각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깨닫게 된다면 인생은 즐기며 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각자의 달란트로 하나님께 약속한 바를 실천하면 그것이 바로 각자의 사명이 됩니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소명이라고 합니다.

헬렌켈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 뭐냐고 나에게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앞을 보는 시력은 있으나 미래를 보는 비전이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성경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꿈이 없으면 뚜렷한 목표가 
없기에 아무렇게나 행동하다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음식을 먹지 않고는 3주간 살 수 있고, 물을 마시지 않고는 3일을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이는 단 3초도 살 수 없다는 글도 있습니다.

비전, 꿈 이란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능력이요, 절망적인 환경에서 오히려 희망을
창출하여 나가는 깃발이요, 없는 것을 찾게 하는 지도의 역할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비전과 꿈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남자의 인생에 있어 초년에 너무 출세하는 것, 중년에 상처하는 것, 말년에 모아놓은 돈이 없는 것이 3대악재라고 말합니다.
현명한 삶이란 무엇입니까?
노자는 물처럼 사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물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부드러우며 무엇과도 화합이 잘 되면서 본질이 변하지 않습니다.
물은 환경에 잘 적응하고 물은 천하 만물을 이롭게 합니다.
물은 언제나 낮은 데로 흘러갑니다.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물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노자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전과자들이 국회의원을 되고,
돈이 있으면 감옥에도 가지 않는 유전무죄의 세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주위를 돌아봅시다.

‘망쳤어’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괜찮아’ 라는 위로의 말을,

‘죽고 싶어’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소중한 존재야’ 라는 말을,

‘힘들어’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있어 행복해’ 라는 위로의 말을 해야 합니다.

 
미국의 소설가 크리스토퍼 몰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만일 우리 인생이 단 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모두 전화기를 붙잡고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목록

닫기